현대의 심리학은 이전 포스팅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철학적인 배경과 자연과학적인 배경에서 탄생했습니다. 그 이후 심리학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요?
이때까지 관념적으로 인간을 이해하려 했던 철학에서 과학적인 방법으로 인간을 이해하려는 과학적 심리학으로 독립하게 된 데에는 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분트(Wundt, 1832~1920)가 그 시발점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가 1879년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에 의식연구를 위한 심리실험실을 처음으로 창설함으로써, 1879년에 현대 심리학은 시작점을 찍게 됩니다. 분트는 많은 연구자들을 양성하여 세계 곳곳에 심리학 강좌와 심리실험실을 개설하도록 한 공로를 높이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분트 이후로 현대 심리학의 발전에 이바지한 초기 심리학자들의 사상을 알아보겠습니다.
1 ) 분트와 구성주의
분트(Wundt, 1832~1920)는 인간를 이해하려면 그가 느끼고 있는 의식의 내용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다른 영역의 과학자들의 분석적 연구방법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화학자가 물질의 최소단위인 원자의 결합 구조를 연구하는 것과 같이 인간의 의식도 그 구성 요소와 결합 구조를 분석해 낼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의식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내성법(introspection)을 고안해 냈습니다. 이것은 의식의 내용을 스스로 관찰하여 언어로 보고하는 방법입니다. 분트는 어떤 복잡한 의식이라도 내성법에 의해 그 구성요소를 분석할 수가 있고 그럼으로써 의식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분트의 심리학을 구성주의(Strcturalism) 혹은 내성심리학이라고 합니다.
분트의 실험실에서 함께 연구하였던 구성주의 심리학파 가운데 티치너(Titchner, 1867~1927)는 미국에 구성주의 심리학을 전파하였고, 20세기 초 미국 심리학계에서 주도적인 인물로서 활동하였습니다.
2 ) 제임스와 기능주의
미국 심리학의 큰 획을 그은 학자는 하버드 대학 출신의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입니다. 그는 의식의 분트의 구성주의에 반대 입장을 보였습니다. 인간을 이해하려면 의식의 구성요소를 분석하여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안라 의식의 전체적 기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적자생존의 원리를 주정하는 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그는 사람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어떤 감각 활동을 통해서 생각을 하고, 목표를 추구하는지 의식의 흐름에 따른 의식작용의 과정과 기능을 연구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제임스의 심리학을 기능주의(Functionalism) 심리학이라고 합니다.
그 외에도 시카고 대학의 듀이(Dewey, 1859~1952), 에인절(Angell, 1869~1949) 등도 제임스와 뜻을 함께 하며 기능주의 심리학파를 형성했습니다. 이들은 미국인의 실용주의적 사상을 배경으로 학문의 목표를 '학문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실용주의적이어야 한다.'는 데에 두고,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심리학의 연구 목적 또한 우리의 생활에서 의식이 무엇 때문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정신역동적 기능을 규명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내성법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의 기능주의도 차츰 행동주의라고 하는 미국의 새로운 흐름에 휩쓸려 갔지만 발달심리학을 포함한 미국 교육학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입니다.
3 ) 프로이트와 정신분석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의 정신분석학(Psychoanalysis)에서는 인간의 무의식을 분석해야만 인간이해가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정신분석학파는 의식의 내용만이 심리학의 대상이라는 의견을 비판하고, 그보다 더 깊은 영역인 무의식의 영역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기에 이들의 심리학을 심층심리학(Depth Psychology)이라고도 합니다.
프로이트는 신경증적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과의 임상 경험, 사례 연구를 통해 인간의 행동이나 사고는 무의식의 지배를 훨씬 많이 받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인간의 마음 안에는 성적 본능과 같은 생득적 본능이 있지만 이러한 본능적 욕구의 표현은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면이 있으므로 억압되는 것이며, 억압된 것은 무의식을 형성해 그로부터 나오는 무의식적 행동(꿈이나 신경증적 증상, 실수 등)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행동의 원인은 합리적 의식보다는 무의식적 동기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보고, 그 무의식적 원인을 분석하는 방법을 정신분석학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정신분석 방법으로는 무엇이든 떠오르는 대로 말하게 하는 자유연상법, 꿈의 내용을 통해 무의식을 분석하는 꿈 분석법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정신분석학적 방법들은 자연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다른 심리학파와는 다른 맥을 띄고 있지만, 정신분석학적 이론은 성격형성이나 이상행동에 큰 시사점을 주며, 임상심리학이나 상담심리학과 같은 개인을 이해하기 위한 심리학에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성인의 문제적 행동이 무의식적 욕망과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출발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정신분석학자들 대다수가 동의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의식적인 욕망이나 충동에는 항상 성적인 속성이 있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에는 비판의 의견들이 있었습니다. 그의 제자인 아들러(Adler, 1870~1937)와 융(Jung, 1875~1961)은 무의식적인 동기와 유아기의 중요성은 인정하되, 성적인 요소보다는 사회문화적 요소를 더 강조하는 신정신분석학파를 형성했습니다.
4 ) 왓슨과 행동주의
그 당시 심리학 연구의 주류였던 왓슨(Watson, 1878~1950)은 초기 심리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의식 또는 무의식 심리학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의식, 무의식, 정신과 같은 개념들은 중세시대의 유물인 미신이라고 단정했습니다. 영혼과 같이 정의되거나 추측될 수가 없는 막연한 개념을 토대로 하는 과학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과학적 심리학이라면 객관적인 관찰이 가능하고 측정할 수 있는 것을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심리학을 행동주의(Behaviorism) 심리학이라고 합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은 파블로프(Pavlov, 1849~1936)의 조건반사 실험(1906)에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손다이크(Thorndike)의 고양이 실험(1898)과 스키너(Skinner)의 쥐 실험(1938)과 같은 동물학습실험의 영향으로 과학적 측면을 더욱 견고히 하게 되었습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에서는 모든 행동을 조건형성의 결과로 보고 인간행동의 기본 공식을 자극 - 반응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극단적인 행동주의 심리학파의 자극 - 반응 관계는 물리학에서처럼 단순 함수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물의 행동에서는 그 관계가 성립될 수도 있지만 인간의 행동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드워스(Woodworth, 1869~1962)는 자극(stimulus)과 반응(response) 사이에 유기체(organism)를 삽입하여 S-O-R 공식을 제시하였습니다. 이 유기체의 변인, 즉 인간의 마음과 정신과정이 자극과 반응 사이를 연결하면서 최종적인 반응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톨만(Tolman, 1866~1959)과 헐(Hull, 1889~1966) 등과 함께 신행동주의 심리학파를 형성하였고, 그들의 사상은 1950년대까지 심리학의 과학화와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와 인간은 자극을 받아 행동한다는 수동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은 환경을 파악하고 이해하고 생각하는 능동적인 존재라고 보는 경향이 강조되면서 점차 쇠퇴하게 됩니다.
5 ) 베르트하이머와 형태주의
왓슨의 활동과 거의 같은 시기에 독일에서는 베르트하이머(Wertheimer, 1880~1943)가 1912년에 형태심리학(Gestalt Psychology)을 발표했습니다. 베르트하이머는 분트가 주장한 것과 같이, 의식이란 구성요소의 단순한 종합체가 아니라 통합된 전체로서 역동적으로 작용하는 존재라고 보며, 의식의 분석적 입장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네온사인처럼 움직이는 자극이 아님에도 움직이는 것으로 지각되는 가현운동(apparent movement)을 실험적으로 제시하면서 구성요소의 분석적 입장으로 설명할 수 없음을 증명하고, 가현운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의식 현상을 전체적, 역동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의식의 내용을 분석하면 원래의 내용은 존재하지 않게 되며, 이 요소들이 다시 결합되더라도 원래의 현상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전체는 부분들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베르트 하이머를 중심으로 코프카(Koffka, 1886~1941), 쾰러(Kohler, 1887~1967), 레빈(Lewin, 1890~1947) 등이 모여 형태주의 심리학파를 형성하였습니다. 이들은 나치 정권에서 추방되어 미국에서 연구 활동을 했습니다. 형태주의 심리학파는 학습, 기억, 문제해결 등에서 지각 중심적인 해석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최근 인지심리학 발달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심리학에 큰 영향을 주었던 초기 심리학파의 사상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학파들은 서로 비판하며 논쟁을 전개하고 각자의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근래에는 어느 특정 학파라고 주장하는 학자는 거의 없으며, 각 학파에서 강조하는 점들을 인정하며 연구에 두루 활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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